책 리뷰

오르가논 : 아리스토텔레스

토기남 2020. 3. 30. 21:29

 

 

0. 궤변가를 가려내라!

 

많은 사람들이 착각하는게,

사상의 다양성 자체는 그리 긍정적인 현상은 아니다.

온갖 사상가들로 넘쳐났던 광장을 유토피아로 여기는 것은 지나치게 순진한 생각이다

기록에 의하면, 고대 그리스는 전세계 각지에서 몰려온 달변가들에 의해,

도덕적 판단은 일관되지 못했고

사람들은 혼란에 빠졌다.

 

 

이를 못마땅히 여긴 아리스토텔레스,

궤변가들을 가려내기 위해 책을 정리하는데, '오르가논'의 저작 동기라고 할 수 있다.

소크라테스,플라톤,아리스토텔레스까지 이어져 만들어진 이 체계를 전통논리학이라고 부른다.

현대논리학이라고 해서, 이런 기본적인 틀을 파괴 한적은 없다.

 

 

 

 

1. 타당함의 정의

 

틀린 사람들을 가려내기 위한 오만한(?) 목적으로, 타당성이라는 개념이 탄생한다

사람들을 설득시키기 위해 필요한 '적절한' 근거 기준을 제시한 것인데.

어떤 논리가 타당하기 위해서는,

전제들이 모두 참이면 결과가 항상 참이어야 한다.

유명한 예시를 들어 본적 있을 것이다

 

전제 1 모든 사람은 죽는다

전제 2 소크라테스는 사람이다

결론 소크라테스는 죽는다

 

 

삼단논법의 탄생인데

동시에, 연역법의 탄생이라고 할 수도 있다.

타당함이란, 명제들 사이의 유기적 관계가 문제 없다는 뜻이기도 하다.

결국 기존의 지식과 맞추어 보는 행위이고,

알 수 있었던 진실을, 기존의 지식을 이용하여 발견해 낼 수 있다.

 

 

 

문제는,이를 일상생활에 적용하는데 있다.

3가지 예시를 가져왔다.

예시 1,2,3

어떤가?

첫번째 논리는 타당성 판단이 쉬운 데 반해,

두번째, 세번째는 딱 잘라 말하기 어렵게 느껴지지 않나?

 

 

 

 

이처럼, 말이 장황해지면, 근거가 있는 말인지 확인하기 어려워진다.

 

 

 

 

 

 

2. 장황한 말을 분해하는 법

 

그렇다

사실, 타당성 자체보다, 

장황한 말을 분해하기 위해, 

생각하는 기준을 명확하게 하는것이 더 중요하다.

아리스토텔레스가 제시하는 논증의 단위는 다음과 같다.

 

 

 

주어 + 술어 형태의 명제를 또다시 4가지로 분류하는데, 

각각에 A,E,I,O라는 이름을 붙였다.

 

 


1) 분해를 통한 타당성 검증의 예

2) 타당성 논증표

 

 

 

 

 

 

 

 

 

 

 


정언명제 단위의 분해를 통해

해석하기 어려운 논리에 대한 타당성 논증이 가능해진다

올바른 논리 전개는 주관에 의해 결정되는 것이 아니다

딱딱하게도, 24개의 타당한 논증법이 표로 정리되 있다

 

 

 

 

 

 

 

3. 존재의 함축

 

논리학에도 큰변화가 있긴 있었다.

'존재의 함축'에 대한 논의였는데,

정언명제를 해석하는 방식에 문제가 있다는 것이었다.

고대사람들은

모든 용은 동물이다 라는 정언명제를 해석할때,

용이 존재한다는 가정을 했었다는 것이다

이처럼 아리스토텔레스는 실체가 항상 존재한다는 가정을 전제로 논리를 평가했다

후대에 벤다이어그램으로 유명한 존 벤이 이에 대한 의문을 지적한다.

'존재를 가정하지 않는 것이 더 타당한 경우가 있지 않나?'

 

 

 

주의 하셔야 할 것이, 존 벤의 입장은, '존재하지 않는다'를 가정한 것이 아니고

''존재한다'를 가정하는 일'을 반대하는 것이다.

*비슷한 사례 : '문을 연다'의 반대는 '문을 안 연다'지 '문을 닫는다'가 아니다.

 

 

 

이해를 돕기 위해, 그림을 통해 나타냈으니, 참고하시길 바란다.


차례로,

1)아리스토텔레스의 입장(존재 함축)

2)존 벤의 입장(존재 미함축)

3)존재 미함축을 반영한 타당성 논증 표

 

 

 

 

 

 

 

 

 

 

 


첫번째, 두번째 그림을 보면 알 수 있듯이

동일한 전제를 세워도, 

어떤 합리적인 사람이 존재한다는 가정에 따라,

타당성에 대한 판단이 갈리게된다

그 결과

원래는 24가지나 되던 타당한 논증이, 존재를 함축하지 않는 것으로 15가지로 줄어든다

 

 

정확히 이런 이유 때문에, 실재성에 대한 가정의 중요해 지는 것이다.

실재에 대한 믿음 여부에 따라, 논증의 타당성이 바뀐다.

'실재론'은 넓은 의미에서, 아리스토텔레스의 논증을 따라간다는 것을 내포하고있다

 

 

지난 리뷰에서 언급한 과학적 반실재론이란

존재에 대한 규명이 불가능의 영역에 있는 점을 인정하고,

존재를 함축하지 않는 벤의 타당성 체계를 선택하겠다는 의미다.

양자 영역에서는 존재에 대한 위치와 움직임이 규명될 수 없다는 '불확적성의 원리'가 그 근거다.

닥치고 계산이나 해라! 

 

 

 

 

 

 

4. 생각의 틀, '러셀의 수학 원리'

 

더 쉬운 방법을 소개하고자 한다.

러셀은 아리스토텔레스가 제시한 체계적 의미에서, 

자명한 세 가지 사고의 법칙을 들었다.

'서구 논리'의 타당성을 검증할 때, 요긴하게 쓰인다.


1) 동일률

모든 사물은 그 자신과 동일하며, 다른 사물과는 다르다. 이에 따라, 그 자신이 특유의 성질·특징을 갖추고 있으며, 이것을 본질이라고 불렀다. 

같은  '본질'을 가진 사물은 같은 것이며, 다른 '본질'을 가진 사물은 다른 것이 된다.

 

2) 비모순율

어느 사물에 대하여 같은 관점에서 동시에, 그것을 긍정하면서 부정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3) 배중률

모든 문장은 참/거짓 중 하나이며, 다른 값은 없다.


이를 근거로,

러셀은 존재에 대해 착각하게 만드는 '주어 + 술어' 구조를 분석했고

일상용어가 만드는 '존재에 대한 인식차'의 문제를 해결하는데 기여했다.

지식의 저주(2) - 황금산

따라서, 어떤 사물이나, 명제에 대해 이야기를 나눌 때,

이 3가지를 통해 타당성을 검증 할 수 있음을 유추할 수 있다.

 

 

이에 대한 자세한 증명과정은

러셀의 '수학 원리'에 있으니, 궁금하신 분들은 참고하길 바란다.

 

 

 

 

 

 

 

5. 주사위는 부술 수 없다.

 

 

 

 

이제 본론이다.

최근 논란의 대표적인 문제 사례라고 생각하는 '주사위'문제를 다뤄 보려고 한다

모든 논리적 결함을 지적하는 것은 무리가 있기에 

적절해보이는 이 사례를 선정하였다.

필요성에 따라 발췌 및 요약을 하였으므로, 원문을 직접 확인하길 추천드린다.

(닥치고 계산이나 해라! 의 댓글을 확인)

 

 

각자의 입장을 요약하자면 다음과 같다.


1) 임모씨의 주장에 대한 해석

1~6의 값을 갖는 주사위라는 실재와

1,2,3의 값을 관찰한 세상을 '가정'했다.

주장에 따르면, 관찰된 1,2,3만을 믿는 경험주의자들은 4,5,6에 대한 가정을 하지 못하므로

실재에 대해 깨닫지 못하게 된다.

 

 

2) 내가 제시한 과학적 반실재론의 해석

'불확정성의 원리'를 통해, 실재를 정확하게 관찰하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것이 증명되었다.

따라서 정확한 비유는

1,2,3만을 관찰되었고, 이보다 큰 수는 관찰 불가능하다는 것이 증명되있는 상황에

실재가 1,2,3,4,5,6이더라 하더라고, 이에 대해 확인하는 것이 불가능하다.

따라서 4,5,6을 가정하는 것은 의미가 없다.


 

 

이 상황에서 

주사위가 부숴지는 상황에 대한 언급은, 동일률에 어긋난다.

논증에 있어서, 주사위에 '실재'라는 변치않는 본질을 규정했다.

이는 드러날 수 있는 관찰가능한 결과가 1~6의 값이라고 정한 것이다.

만약 이러한 성질이 변한다면, 그것은 애초에 실재가 아닌 것이다.

 

 

 

주사위가 부서진다는 것에 의해, 확인가능한 숫자가 변할 수있다는 발언은 모순이다

즉, 타당하지 않다

같은 '주사위'라는 동일한 단어로 표현되었을 뿐, 

다른 속성을 지닌 대상에 대한 선언에 불과하다.

 

정확히 이러한 이유로 '주사위'라고 했고

당신 말마따나 부족한 설명을 여기에 남긴다.

 

 

 

 

 

 

6. '비논리적인 사람'은 세상이 결정한다

 

그럴 듯 하다는 인상만 갖고서 '논리성'을 평가하는 사람들에게

깊은 역겨움을 느낀다.

어떤 사람을 '논리적이다'라고 표현하기 위해, 

분명한 기준을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

왜냐구?

'논리'를 발견하고, 사용한 사람들이 규칙을 정리했으니까

삼각형이면서 원일 수 없듯 자명한 사실이다

 

 

세상에는 틀렸다고, 자신있게 말할 수 있는 영역이 있다.

두렵지만 사실이다.

논리 싸움에서, 전제를 바꿔서 대답하면 안된다.

이는 제 3의 길이나, 통합과는 엄연히 다른 것이다.

과학이 아닐 뿐만 아니라, 논리가 아니다

 

 

장황하게 온갖 종류에 단어들을 끌어다 쓰는데, 이해가 안되는 부류가 있다

도중에 교묘하게 단어의 의미를 추가하거나 바꿔버린다.

자기도 모르게 하는 거일 수도 있다.

비논리성은 발화자의 감정이나 의도와는 전혀 상관없는 결정되는 영역이다.
이에 대해서는 앞서 토론의 정의를 왜곡하려는 움직임에 대한 비판에서도 강조한 바 있다.

이해할 수 없는 지혜

 

 

 

이런 사람들이 꼭 단어 물어보는걸 싫어하더라

남을 설득하기 위해, 누구도 시키지 않은 말과 글을 내뱉는 사람이

다른 것도 아니고, 당신 생각에 대한 질문에 왜이리 인색할까

당신의 생각을 들어줬던 사람들도 '바쁜'사람들이었다.

지금까지 당신에게 질문하지 않았던 이유는

관심이 없어서거나 단어를 모른다는 사실을 드러내기 싫어서지

그게 예의라서가 아니다

지겨운 당신 얘기를 들어줬던 사람들에 대한 예의나 지켜라

 

 

 

또, 연역적 틀과 전혀 상관없는 정보에 의존하는 사람을 조심해야 한다.

파토스에 호소하는 선동가의 전형적 특징인데, 

이를테면, 인종차별주의자였다느니, 바람둥이였다느니,

실패자의 낙인 등등이다.

메신저에 대한 인신공격적 성향이 다분하다

'잘못된 사람'의 논리를 틀렸다고 예상하는 심리를 이용하는 것이다.

계속 이야기하지만 타당성은 그걸 보는 사람들의 공감으로 결정되지 않는다

열심히 해봐라

 

 

 

 

 

 

7. 이기려드는게 문제라고?

 

자신만의 논리에서 벗어날 수 없기에, 

지적하는 행위 자체가 본질적으로 문제있다는 듯한 발언에 대해서도 한마디 하겠다

이는 '다름'만이 존재한다고 보는, 포스트 모더니즘적 사고의 전형이다.

이는 이성의 한계에 대한 의문이 깔려있는 것이고

자각과는 상관없이 행동과 발언에 의해 결정되는 것이다.

나는 이에 대해, 451에서 누구보다 많이 고민한 사람 중 하나라고 자신한다.

머리와 꼬리가 맞물린 두 마리의 뱀

 

 

 

모든 것을 확신할 수 없다는 믿음에는 비겁한 거짓이 숨어있다.

신기하게도, 이런 포스트모더니즘의 좀비들은 

인간이 확신 할 수 있는 것이 없으므로, 모든 논리는 타당할 수 없다는 발언과

인간은 확신 할 수 있는 것이 없으므로, 모든 논리가 타당할 수 있다는 발언을 동시에 한다.

전자는 남의 논리의 의문을 표할 때,

후자는 나를 방어할 때,

본질은 결국 '인간'의 무지 뒤에 '나'라는 개인의 무지를 숨기려는 비겁한 행위일 뿐이다

 

 

 

오히려 반대로 묻고 싶다.

이런 당신을 정말로 이기고 싶어한다고 생각하는지

 

 

 

여담이지만, 과학자들이 귀납법을 몰래 쓰고 있다는 식의 발언에 강력한 의문을 표한다.

귀납적 증명 방식은 여전히 강력한 과학 도구이다.

그 한계를 인식하고, 오류를 축소시키기 위해 통계적 기법과신뢰성 개념을 도입하여 유지되고 있다

'의문을 표하지 않는 것'과 '비밀스럽게 쓰는 것'은 분명히 다르다.

당신이 그렇게 생각한 타당한 근거를 대라

 

 

 

다시 한번 적는다, 나는 이에 대해 어떠한 설명도 듣지 못했다

'책을 읽어봐라', '권위자가 ~~라고 이야기했다', '역사적으로 반박된 이론이다', 등등

경험적 선언을 나열하는 행위는 사절한다.

누구보다 귀납법의 한계를 강조하면서, 자신의 귀납적 한계는 발견하지 못하는게 신기할 따름이다.

자신의 경험만큼은 있는 그대로 신뢰해주길 바라는 것이다

 

 

 


참고영상 : https://www.youtube.com/watch?v=RQsXhObTe4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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