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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이렇게 철학을 하였다 (1) : 버트런드 러셀

토기남 2020. 3. 30. 21:26

 

"난 절대로 내 믿음을 위해 죽지는 않을 것이다. 내가 틀렸을 수도 있으니까" -버트런드 러셀-

 

 

일전에 "이 방에 코뿔소가 없다"는 논증을 따진 비트겐슈타인을

제자로 받아들인 러셀의 일화를 언급한 적이 있다.

일면에서 알 수 있 듯이, 러셀은 자신이 논문으로 낸 내용도 의심하는 인간이었다

동시에 어떤 존재에 대한 확신은 매우 어려운 것임을 일깨워준다.

 

 

이처럼 똑똑한 사람들의 생각은, 당연한 현실을 꽝!하고 무너뜨려버린다.

지식의 저주에 걸린 것일까

모든 것을 의심하느라, 즐길 수가 없는 상태에 놓였다.

자신있게 이야기할 정도로 무언가 안다는 것,

'지식'이란 무엇을 의미할까

 

 

 

1. 플라톤의 이데아

 

동굴에 비친 모습에 대한 비유는 익히 들어 알고 있을 것이다.

본 모습인 '이데아'를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는 인간의 한계를 지적함과 동시에

이성적으로 가장 뚜렷한 해석이 존재할 것이라는 확신을 전제하고 있다.

일반적인 경우라면 지식체계의 근간이 되고 있는 믿음이다

본질을 깨우치기 위해서 환영을 걸러내는 작업을 해야하는 것이다.

 

 

이러한 철학을 바탕으로 '지식'을 정의하는데

3가지 조건을 만족해야만 한다

 

첫째, 명제 P가 참이어야 한다.

둘째, 어떤 S가 명제 P를 믿어야 한다.

셋째, 명제 P에 대한 S의 믿음이 정당화 된다.

 

 

Justified, True, Believed의 앞글자를 따 JTB이론으로 불린다.

인류가 수천년간 믿어온 특성인 셈이다.

 

 

 

2. 러셀의 찻주전자

 

 

당신의 생각이 상식과 달라도 두려워하지말아라. 지금은 인정받는 생각들도 처음에는 다 이상해보였었다.   -버트런드 러셀-

"어떤 주장이 널리  받아들여졌음이 그 주장의 타당성을 조금도 뒷받침하지  못한다" -버트런드 러셀-

러셀은 이러한 지식의 속성을 잘 알고 있는 듯 했다.

특히,  '믿음'은 지식의 충분조건이 아니라는 사실에 재미있는 비유를 들었다

 

 

 

"만일 내가 지구와 화성 사이에 도자기 찻주전자 하나가 타원 궤도로 태양 주위를 돌고 있다고 주장하고, 

이 찻주전자는 너무나 작아서 성능이 가장 뛰어난 망원경으로도 볼 수 없다고 덧붙인다면 

아무도 내 주장을 반증하지 못할 것이다. 

하지만 아무도 내 주장을 반박할 수 없기에, 

내가 '이를 의심하는 것은 인간의 이성에 대한 참을 수 없는 억측' 이라고 주장한다면,

모두들 당연히 내가 헛소리를 한다고 여길 것이다. 

하지만 만약 이 찻주전자가 존재한다는 것이 고대의 책에도 나오고 일요일마다 신성한 진리로서 가르치고 학교에서 아이들에게 주입한다면, 

이 존재를 믿기를 망설이는 것은 기행의 표식이 되고 

이를 의심하는 자들은 현대의 정신과 의사나 옛날의 이단 재판관의 관심 대상이 될 것이다. "

 

 

위 일화에서 주목해야 할 점은

사람들이 믿던, 안 믿던 정보가 '참'인가는 중요하지 않다는 것이다.

양극단의 반응은 우리의 착각을 일깨워준다

많은 이들의 공감을 받는 해석이라고 해서 그것이 참인 근거는 어디에도 없다.

 

 

 

대중들은 불편해하지만 지식 기관의 정보와 내 생각이 다를 경우

전문성을 지닌 기관이 맞을 확률이 높다.(악의적으로 왜곡한 경우가 아니라면)

올바른 해석을 위해 모인 사람들로 가득하기 때문이다.

그것이 '전문성'의 의미이다.

공감은 믿음의 한 종류일 뿐이다.

 

 

 

지식인의 역할에 속하는 논리적인 정당화와 참임을 확인하는 작업을 거친 후

대중들의 믿음을 불러일으켜야 하는 것이 일반적인 순서일 것이다

역사적으로 지식의 탄생과 유포의 과정을 보면 당연한 것이다.

지식은 왕족 및 귀족들이 과학자들을 육성하여 필요한 지식을 발굴해내어 치세에 힘쓰는 용도로 쓰였으며

현대에 이르러 대학이 그 역할을 물려받았다.

이름이 붙여지고 그 뜻은 사전에 적혀 보급된다.

 

 

 

 

3. 게티어의 반박

 

JTB 이론은 몇천년간 문제가 없는 듯 했다.

게티어가 논문을 내기 전까지,,,,

"정당화된 참인 믿음은 지식인가?" 라는 제목의 3쪽짜리 논문에 나온 내용은 아래와 같다.

두가지 반례를 제시하는 데

그 중 하나를 가져왔다.

 

 

(1) 사람 A와 B가 있다.

(2) 사람 A와 B는 각각 자신의 주머니에 10개의 동전을 가지고 있다.

(3) 사람 A는 B의 주머니에 10개의 동전이 있다는 것을 세어보아, 'B가 10개의 동전을 가지고 있다.'는 정당화된 참 명제(true proposition)임을 믿는다.

(4) 사람 A는 자신의 동전을 세어보지 않았으므로, 자신이 동전 10개를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모른다.

(5) 사람 A와 B는 같은 회사 이력서 제출하였다.

(6) 사람 A는 B가 이 회사 취직된다는 '신뢰할 수 있는 정보'를 가지고 있다.

(7) 사람 A는 'B가 10개의 동전을 가지고 있다.'는 정당화된 참 명제와 A의 신뢰할 수 있는 정보 근거로 '10개의 동전을 가진 사람이 취직된다.'라고 유추 하고 믿는다.

(8) 사람 A가 취직되었다. 이로써, 'B가 10개의 동전을 가지고 있다.'라는 정당화된 참 명제에 근거했음에도 불과하고,

 A의 '동전 10개를 가지고 있는 사람이 취직된다'는 믿음은 아직 정당화 되지 못했다.

(9) 이후, 사람 A가 자신의 주머니에 있는 10개의 동전을 세어보아, 자신이 10개의 동전을 가지고 있음을 알게 되고,

 '10개의 동전을 가지고 있는 사람은 취직된다.'는 명제는 참인 근거를 가지고 정당화된다.

 

 

'동전 10개를 가지고 있는 사람이 취직된다.'라는 명제는, 

A에게 있어서 정당화된 참인 믿음이지만

'동전 10개를 가지고 있는 사람이 취직된다.'라는 명제의 정당화에 '거짓'인 '신뢰할 수 있는 정보'를 근거하였으므로

'동전 10개를 가지고 있는 사람이 취직된다.'는 명제 명제로써 성립할 수 없게 된다. 

따라서, '동전 10개를 가지고 있는 사람이 취직된다.'는 A에게 '정당화 된 참인 믿음'일지라도, 지식이 될 수 없다.

 

 

'동전 10개를 가지고 있는 사람이 취직된다' 라는 명제는 정당화,참,믿음을 충족하지만

우리는 이를 지식이라고 부르지 않는다.

검은 백조가 나타났다.

 


 

위키백과 https://ko.wikipedia.org/wiki/게티어_문제 

게티어 논문 Edmund Gettier, "Is Justified True Belief Knowledge?," Analysis 23 (1963): 121-123
참고 영상 https://www.youtube.com/watch?v=Fh8W8Q32hXk&t=388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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