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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론 기획하는 남자, 토기남
단어와 대상 : 월러드 밴 오먼 콰인 본문
1. 콰인은 누구인가?
20세기 미국의 수학자이자 철학자,
언어철학, 형이상학, 인식론 등 여러 분야에서 수많은 업적을 남겼다
현재 많은 제자들이 철학자가 되어 강단에 서기 때문에
분석철학적 전통이 미국 철학계의 주류가 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는 평을 받고 있는 인물이다.
2. 번역의 불확정성
논리 실증주의자들에 막대한 타격을 입힌 인물로 유명한데,
대표적으로는 경험의 태생적 한계를 지적하는 번역의 불확정성이 있다.
다음의 사고실험을 읽어보자
한 언어학자가 원시부족의 언어를 연구하기 위해 오지로 들어갔다. 말이 통하지 않는 원주민과 함께 있는데, 마침 토끼 한 마리가 지나가는 것을 보고 원주민이 "가바가이"라고 말했다. 언어학자는 "가바가이"라는 말을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상식적인 대답은 이때 "가바가이"가 한국어의 "토끼"와 의미가 같은 것으로 해석하는게 맞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 근거는 무엇인가? "가바가이"가 "토끼의 이데아"와 의미가 같다고 보지 못할 근거는 어디에 있는가? 원시부족이 플라톤주의 철학에 깊은 조예가 있어서 "저기 토끼의 이데아가 뛰어가고 있느라?"라고 말하는게 아니라고 단정할 근거가 있는가? 이게 너무 극단적이라면 "토끼의 귀"가 아니라고 단정할 근거는 어디에 있는가? fMRI를 동원해서 "가바가이"라는 말소리가 한국어 "토끼"와 생물학적으로 동등한 신경 신호를 유발하는 것을 확인한다 한들, 이는 "가바가이"와 "토끼"의 의미가 같다는 것을 보장해주지 못한다.
이 문제를 돌파하기 위해선 "토끼", "토끼의 이데아", "토끼의 귀" 등을 구별할 수 있는 상황에서 다시금 원주민이 무슨 말을 하는지를 들어봐야한다. 하지만 문제는 결국 다시 반복된다. 이를테면 "가바가이"와 "토끼"가 의미가 같은지 다른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한국어 "~의 이데아", "~의 귀"와 의미가 같은 원주민 언어 단어가 결정할 수 있는 근거는 없다. 즉 순환이 발생하는 것이다.
따라서 주어진 경험적 데이터만을 근거로 삼아 "가바가이"가 "토끼"와 의미가 같은지 결정하는 것은 원리적으로 불가능하다.
'가바가이' 사고실험에 따르면
특정한 경험적 상황(숲 속에서 토끼가 뛰어가는 상황)과 특정한 언어적 표현("가바가이")의 의미가 일대일로 대응될 수 없다
곧 언어 표현의 의미는 바로 그 개별 표현에서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그 언어 체계 전체를 참조할 때에만 비로소 결정될 수 있다.
예를 들어, '그 녀석 참 진국이야'라는 문장을 생각해보자.
어떤 외국인이 감각경험 만으로 이 문장의 의미를 추론하고자 한다면, 그 추론은 실패할 수밖에 없다.
이 문장의 의미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한국어 언어체계에서 '진국'이라는 표현이 어떤 맥락에서 사용되는지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
언어 학자는 원주민들의 언어 체계를 밝혀내야 한다.
그런데 이를 위해서는 '가바가이' 등 개별 표현의 의미를 먼저 밝혀내야 한다.
그런데 전체를 이해하지 못하고는 '가바가이'를 이해할 수 없다.
무한의 순환이 발생하는 것이다.
이러한 세계관을 인식론적 전체론이라고 한다.
3. 자비의 원칙
이런 세계관에 따르면
세상을 인간의 언어로 번역해온 과학계의 지식은 '참이라고 증명된 지식' 이 아니라
'참인 지식'과 '거짓이라고 증명되지 못한 지식'이 혼재되어 있다는 뜻이다.
콰인은 번역 불확정성을 타개할 수 있는 돌파구로 자비의 원칙을 제안한다.
이를 요약하자면 이렇다.
'저 논증을 보니까 허점이 많군. 하지만 저 논증을 제안한 사람이 바보는 아닐거야.
그러니까 내가 최대한 저 논증의 허점을 메꿔줄 필요가 있어'
책 <단어와 대상>(1960)에서 오토 노이라트의 비유를 인용한 것을 통해 이를 확인할 수 있다.
우리는 스스로의 배를 재구축해야 하지만 바닥부터 새롭게 개조할 수 없는 선원들과 같다. 하나의 대들보를 빼내는 순간 다른 대들보를 동시에 넣어야하며, 또한 이러한 작업을 위해 선체의 나머지 부분을 지지대로 사용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오래된 대들보와 유목을 사용하는 방식으로 배를 완전히 새롭게 만들어 낼 수는 있지만, 그 과정은 점진적인 구축일 수밖에 없다.
물론 문제를 완전히 해결하는 것은 아니고,
안타깝지만 인간에게 주어진 숙명정도로 간주한다
비유를 빌리자면 '대안은 없지만 떠있는 조립중인 배'에 해당된다는 것이다
4."과학"에 대한 3가지 인식 ( feat. 논리 실증주의자, 칼 포퍼, 콰인 )
따라서, 경험론에는 한계가 있으나 대안이 없으니 조심히 사용하자는 입장이지
기존의 경험적 지식체계 자체를 불신하자는 주장과는 거리가 멀다.
이해를 돕기 위해 3가지 관점의 과학 이론 모델을 비교해보자
각각의 모델에 대해서 지금까지 종종 리뷰에 언급을 해왔기 때문에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1) 논리실증주의자들이 생각하는 과학이론의 정당화 ( by 칼 포퍼 )
(전제1) 어떤 가설 H가 참이라면, 현상 P가 관찰될 것이다.
(전제2) 현상 P가 관찰될 것이다.
(결론) 따라서, 가설 H는 참이다.
칼 포퍼가 단순화 시켜놓은 과학 모델이지만 논리실증주의자들이 주장하는 바와 틀리지는 않을 것이다.
결론부터 말하면 이러한 논리 전개방식은 타당하지 않다.
가설H가 거짓이여도 현상P가 관찰되는 경우가 있기 때문이다.
아이가 나쁜 성적을 받은(P) 이유는 노력을 안해서(H)가 아닐 수 있다.
그냥 머리가 나빠서일 수 도 있는 것이다.
이를 후건긍정의 오류라고 한다.
(2) 칼 포퍼가 생각하는 타당한 정당화 ( by 칼 포퍼)
(전제1) 어떤 가설 H가 참이라면, 현상 P가 관찰될 것이다.
(전제2) 현상 P가 관찰되지 않는다.
(결론) 따라서, 가설 H는 거짓이다.
칼 포퍼는 기존 과학의 이러한 문제를 지적하며 반증 모델을 제시한다.
가설이 거짓이라는 것만 증명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는 논리적으로 어떤 결함이 없으므로, 칼 포퍼의 지적은 타당했다고 할 수 있다.
(3) 인식론적 전체론 (by 콰인)
(전제1) 가설 H가 참이고, 과학이론 T가 참이고 관측장비에 오류가 없고 실험절차에도 오류가 없다면, 현상 P가 관찰될 것이다.
(전제2) 현상 P가 관찰되지 않는다.
(결론) 따라서, 가설 H가 거짓이거나, 과학이론 T가 거짓이거나, 관측장비에 오류가 있거나, 실험절차에 오류가 있다.
콰인은 이에 한 술 더 떠,
인식론적(감각자료에 기반한 관측이 정확했었다는) 믿음이나 가설H를 세우기 위한 과학 이론T가 생략되어 있었으며
칼 포퍼 모델에서 주장하는 바와 달리
현상 P가 관찰되지 않았을 시,
기존 이론 T 가 틀렸거나, 실험을 잘못 했을 수도 있으니
가설 H가 틀렸다고 100% 확신을 갖고 이야기 할 수 없다는 점을 지적했다.(이를 뒤엠-콰인 논제 라고 한다.)
그러나 이와 동시에 자비의 원칙을 적용하여
기존 학계의 검증을 거친 과학이론 T와, 연구실의 관측능력에 대한 믿음을 기반으로 가설 H에 대한 판단을 해야한다
콰인이 제시하는 모델은 칼 포퍼의 반증 모델을 완전히 폐기해버린 것이 아니다
오히려 생략된 부분을 언급한 보충에 가깝다.
실제로 논문을 써보면 알겠지만, 절차나 장비에 대한 주의를 기울인 것일 뿐
가설 H를 부정하는 기존의 방식을 그대로 답습하기 때문이다
5. 콰인은 만능열쇠가 아니다
콰인의 철학을 겉핥기식으로 배운사람들이 종종
과학에는 인식적 한계가 있으니 틀릴 수도 있다는 사실을 끊임없이 주장하며
자신의 주장에 힘을 싣곤한다
이는 근본적으로 모순적인 어린아이의 칭얼거림에 가깝다
애초에 콰인이 주장하는 바는,
경험적 판단을 종합하는 모든 체계가 갖고 있는 한계이지,
과학만이 갖고 있는 문제점이 아니다.
오히려 같은 조건이면 이에 관심있는 과학자 집단이,
논리적으로 문제가 없는 '반증'이라는 도구를 통해 걸러낸 정보가 참일 확률이 높다
6. 자비의 원칙은 무죄추정이 아니다.
자비의 원칙이 상대방이 타당 논증을 했을 것이라는 믿음을 갖자는 것인데,
누군가를 무시하는 것은 이를 위반하는 행동이 아닌가라고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허나 이는 잘못된 이해이다.
이미 타당하지 않다고 판명난 논증에 대해서는 다룰 필요가 없다
대표적인 예로 천동설 같이 이미 논리적으로 파기된 주장이 그러하다.
비슷한 이유로, 논증의 구조상 그 위치에 꼭 있어야 하는 전제가 틀렸을 경우에는 굳이 자비의 원칙을 적용할 필요가 없다.
'가능한 한 가장 매끄러운 구조로 분석될 때까지 상대방이 빼먹은 단계를 매끄럽게 보충해 줘라'라는 것이지
이해가 가지 않는 주장을 할 때, 항상 상대방을 위하라는 것 과는 거리가 멀다는 의미다
https://namu.wiki/w/윌러드 밴 오먼 콰인?from=콰인
youtube.com/watch?v=Gt_cv6FUbc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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